겨울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괜스레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고 챙기게 된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는 전시회와 독서로 우리의 마음도 한번 어루만져주길 바라며, 따뜻하고 인상 깊은 기억을 심어줄 책과 전시회를 모아 소개한다.
1. 김호연 《 불편한 편의점 2》
《불편한 편의점 1》의 대성공 신화에 힘입어 출판된 《불편한 편의점 2》는 모두가 예상 했듯 제목만 불편하다. 여전히 훈훈하고 여전히 감동적이다.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2》표지 (사진= 나무옆의자 제공)
전체적인 구성은 1편과 조금 다르지만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핵심 인물과 장소는 동일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현실 반영 100%로 코로나19 팬데믹이 만들어낸 일상의 단절 상황을 배경으로 한 다는 것과 1편에서 묵직한 중심축이 되어줬던 ‘독고’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정도다.
독고의 부재가 아쉽긴 하지만 그의 존재감과 맞먹는 또 한 명의 야간 알바 '근배'가 든든하게 2편을 지탱해준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는 소설 특유의 구성 때문에 처음엔 1편과 너무 비슷하게 흘러가는 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김호연 작가의 생각을 너무 얕본 것 아닐까. 다양한 에피소드로 1편 등장인물들과의 적당한 연결고리를 통해 소시민의 애환을 감동적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는 여전히 탁월해 2편을 기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우리 주위에 있음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읽다 보면 우리가 직면해 있는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마주봐야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풀어가는 삶의 이야기가 되레 독자의 마음을 토닥여주는 신비한 책. 부담 없이 술술 읽혀 앉은자리에서 완독이 가능하니 베스트셀러의 이름값을 믿고 선택해보길바란다.
2. 에밀리 와프닉 《 모든 것이 되는 법 》
"뭐가 되고 싶니?" 어렸을 적 이것만큼 많이 들어본 질문도 없을 거다. 어릴 땐 아무 고민 없이 장래 희망에 대해 똑 부러지게 말하고 다녔지만 나이가 들수록 "뭐가 되고 싶냐"는 말에 고민이 많아진다.
에밀리 와프닉 《 모든 것이 되는 법 》표지 (사진=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으면 어쩌나. 과거엔 여러 가지 일을 조금씩 잘하는 것보다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하는 게 좋은 거라고 배우며 자랐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사회에 완전한 지각변동이 일어난 지금, 뭐가 더 좋은 거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게 됐다.
오히려 예능에서는 '부캐'가 대세가 되고 'N잡러'라는 단어는 능력자를 대변하는 말이 됐다. 에밀리 와프닉은 팬데믹이 터지기 훨씬 전부터 '다능인'들이 우대받는 사회를 예언했다.
호기심 많고 재능이 넘쳐나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삶의 방식이 인정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던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이 시대를 단언했던 에밀리 와프닉의 혜안을 지금 이라도 좇아가보는 건 어떨까.
3. 박상영 《믿음에 대하여》
《믿음에 대하여》는 2022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손꼽히는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로 선정되며 화제가 됐던 소설가 박상영의 신작인 연작소설이다.
박상영 《믿음에 대하여》 표지 (사진= 문학동네 제공)
《대도시의 사랑법》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잇는 '사랑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이렇게까지 센세이션을 일으킬 줄 누가 알았을까. 호불호가 갈릴 동성애 코드가 깔려 있음에도 박상영 작가의 섬세한 필력은 그런 요소들을 다 차치하고서라도 기필코 완독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4개 에피소드로 옴니버스식 구성을 이루고 있는 《믿음에 대하여》는 여러 인물들의 삶을 따로 또 같이 그려내며 직장인들의 삶의 애환을 매우 현실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편치만 은 않은 여러 관계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읽는 내내 우리 네 삶을 떠올리게 한다.
내 삶의 실타래는 잘 풀려나가고 있는가. 인물들의 삶을 돌아보며 같이 고민하게 되는 순간, 스르르 나도 모르게 책에서 위안을 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4. VIVA ARTE
'예술 만세'라는 뜻의 'VIVA ATRE'를 주제로 하는 전시는 형형색색의 포스터부터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VIVA ARTE' 포스터 (사진= 더 현대 서울 제공)
6개국 22명의 그라피티 작가들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틀에 박힌 형식과 전통적 규범에 얽매이기보다 대중과 자유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열망이 담겨 있다.
현대 순수예술에서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은 그라피티와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은 팝아트 작품 등이 익숙 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형태로 전시되어 누구나 즐기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됐다. 작품 하나하나가 주제도 재료도 모두 예측되지 않아 도슨트를 듣지 않는 이상은 정말 오롯이 자신만의 해석에 기대야 한다. 그 때문에 전시를 보면 볼수록 예술적 세계관이 확장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서울 전시만을 위한 라이브 페인팅 과 한정판 굿즈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전시가 막을 내리기 전 꼭 관람해보길 바란다.
2. 뒤뷔페展 그리고 빌레글레
프랑스가 피카소와 함께 가장 자랑스럽 게 여기는 화가 ‘장 뒤뷔페’의 전시가 우리 나라에서 12년 만에 열렸다.
'뒤뷔페展 그리고 빌레글레' 포스터 (사진= 소마미술관 제공)
오랜만에 한 을 찾은만큼 장 뒤뷔페 재단이 적극 참여해 그의 회화, 조각 등을 포함한 대표작 67점을 함께 엄선했다. 특히 장 뒤뷔페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우를루프(L’Hourloupe)' 시리즈가 대거 소개되어 눈길을 끈다.
또한 '어셈블리지 (assemblage)' 개념의 창시자이자 주류 문화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급진적 아티스트인 장 뒤뷔페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가 많았는데 그중 프랑스 화가 자크 빌 레글레의 작품 30여 점이 함께 전시되어 전시회의 규모를 키웠다.
데콜라주(décollage)로 작업하는 프랑스의 혼합 미디어 예술가인 자크 빌레글레는 96세를 일기로 지난 6월 6일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번 전시가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준비한 회고전이 되어 의미가 남다르다.
프랑스에서 칭송받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장 뒤뷔페 를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그의 작품을 접하는 순간 아름다움이나 추함의 개념을 벗어나 '원초적' 그 자체가 주는 순수한 매력에 매혹될 것이 분명하니 날을 잡고 충분히 오래 감상해보길 바란다.
3. 장 줄리앙 : 그러면 거기
이번 전시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아티스트 장 줄리앙의 첫 번째 회고전이라 더 특별한 전시회다.
'장 줄리앙 : 그러면 거기' 포스터 (사진= DDP 제공)
장 줄 리앙의 초기 작품부터 그가 새롭게 탐구해온 최신 작품들까지 총망라된 이번 전시는 예매를 하고 가더라도 현장에서 대기 시간이 발생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장 줄리앙만의 독창적이면 서도 위트 넘치는 작품 스타일에 글로벌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며 날이 갈수록 인기가 치솟는 중이라 많은 대기 인원을 감수하고서라도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전시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작업하며 개인적으로 소장해온 100권의 드로잉 북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작품 작업 틈틈이 써온 듯한 작가의 노트도 보이는데, 이 전시회가 특별한 건 바로 전시된 작가의 개인 물품 위로 장 줄리앙이 직접 그려 넣은 그림과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전시회 시작 2주 전부터 와서 직접 작업한 거라 오직 한국 전시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 이 특별한 기회를 놓치지 말길 바란다.
작가의 예술관을 더 깊이 공유하고픈 이들을 위해 무료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되니 이어폰을 필수로 챙겨가길 바란다.
[맥앤지나=송지은 기자 magajina11@gmail.com]